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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수기 6

등록일 2021-04-06 작성자 카운슬링센터 조회 1851

발목에 돌을 매달고 바다 속으로 가라앉는 느낌을 1년간 느꼈습니다.  결국 혼자 버틸 수 없는 수준에 이르렀습니다.

 

그때 용기를 내어 제가 할 수 있는 마지막 행동은 상담센터를 찾는 일이었습니다. 반신반의했습니다. 사실 병원을 가야 할 수준이라고 스스로 단정 짓고 있었거든요, 하지만 환자라는 사실을 확인 사살당하기는 싫었습니다. 병원에 갈 엄두가 도무지 나지 않았고 사설 상담센터는 너무나도 비쌌습니다.

 

그래서 학교 상담센터의 문을 두드렸습니다. 식이장애로 생활패턴이 무너진 것이 가장 고통스러웠습니다. 20kg을 감량한 후 이전으로 돌아갈까 무서웠습니다. 그런데 날이 갈수록 음식에 대한 욕구는 강해져 어두운 방 안에서 폭식을 일삼았고 자존감이 낮아졌습니다. 코로나로 사람과의 교류도 줄어드니 상태는 더욱 심각해졌습니다. 매일이 공허했고 공허함을 자학행위로 채워나갔습니다.

악순환의 연속이었죠. 더불어 진로에 대한 불확신이 불러오는 공포는 저를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인간으로 만들었습니다. 집중력과 기억력도 떨어졌고, 남들은 잘 준비하는 것들을 시작할 엄두조차 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1년을 빈껍데기처럼 살았습니다.

 

처음부터 그런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20살 때부터 동아리 활동도 적극적으로 해왔고, 항상 누군가의 시선 속에 저는 열심히 활동하는 쾌활한 사람이었거든요, 근데 사실 그 시선 속에서 저는 저를 돌보지 않았습니다. 친구가 어떨 때 기분이 나쁜지, 좋은지는 알았으면서 나는 어떨 때 행복하고 우울한지 알지 못했습니다. 상담을 통해 저는 제가 무엇에 울고 웃는 사람인지 되돌아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선생님과 차근차근 얘기를 나눈 것이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나의 유년 시절부터 현재까지 돌아보았고, 그동안의 나는 어떤 사람이었는지 고민해볼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조금씩 나에 대해 파악해보았고, 자기 조절하는 방법을 선생님과 함께 찾아 나갔습니다. 드라마틱한 조절은 아니었지만 조금씩 스스로를 통제하거나 풀어주는 방법을 알게 되니, 변화할 수 있다는 희망이 생겼습니다. 사소한 희망은 제가 사소한 시작도 할 수 있게 만들었습니다. 그동안 놓았던 것들을 다시 잡을 힘이 생긴 것입니다. 잠시 놓고 쉬는 일이 실패를 뜻하지 않는 것도 깨달았습니다.

 

그동안 쉬는 것은 뒤처지는 일이라고 생각해왔는데요. 그래서 앞만 보고 달렸습니다. 그러나 오히려 주변에 휩쓸려 내가 나를 돌보지 못하고 살아간다면 후에 더 크게 아플 수 있다는 점을 알게 되었습니다. 상담을 통해 안전하게 다치는 법을 배울 수 있었던 것입니다. 스키를 탈 때 넘어지는 법을 잘 배워야 큰 부상을 당하지 않는 것처럼요. 이 배움을 몰랐다면 또 다른 시련에 앞에 저는 완전히 무너졌을 것입니다. 그동안 나 자신이 실망스러울 때면 원망의 화살을 스스로에게 뿐만 아니라 부모님과 주변으로 돌리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알게 되었습니다. 현재의 나는 나의 선택으로 만든 것이며 나의 선택으로 충분히 변화할 수 있다는 일을요. 드라마틱한 변화가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여전히 식이조절은 스트레스이며 취업 준비에 대한 두려움으로 불안합니다. 하지만 상담을 통해 저는 이 불안 속에서도 나 자신을 보듬으며 견뎌나갈 방법을 배웠습니다. 덕분에 지난 1년처럼 또 한 번 무너져도 툭툭 털고 일어날 수 있다는 확신이 생겼고요. 상담 첫날 상담선생님께 울면서 다시는 못 일어설 것처럼 마음을 털어놨던 때와는 확연한 차이였습니다.

 

이 글을 읽고 있으시다면 너무나도 힘든 순간을 견디고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저도 그랬으니까요. 힘내라는 말처럼 공허한 말이 없기에 그런 말 하지 않을게요. 힘내지도 말고 그냥 상담센터 한번 찾아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세상이 참 내겐 참 무심하구나 느껴져 절망했지만 상담센터에는 제 말에 귀 기울여 주는 분이 계시더라고요. 제 말을 온전히 들어줄 사람이 있다는 것 그 자체가 조금이나마 힘이 되었습니다. 상담은 끝이 났지만, 저는 또 제가 무너지는 날이 오면 주저하지 않고 학교 상담센터를 다시 찾을 것입니다. 물론 그런 날이 자주 오진 않았으면 하지만요.